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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O의 미래, 사회적 합의에 달렸다
한겨레신문 정남기 논설위원
jnamki@hani.co.kr
유전자변형농산물(GMO)이 세계 곡물시장을 장악하는 데는 불과 10여 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1994년 칼젠이 무르지 않는 토마토를 상업화한 이후 GMO는 15년 만에 세상을 완전히 바꿔놨다.
곡물만 아니다. 복제동물 유래 식품도 상업화를 앞두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해 초 복제동물의 식품 소비를 허가했다. 복제 동물의 고기와 우유를 먹는 데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지난 5월 복제 소의 식품 성분이 보통 소와 차이가 없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이 추세라면 조만간 복제동물 식품이 나오고, 머지 않은 장래에 유전자변형동물 식품이 식탁에 오를 판이다. 유전자변형동물 식품이 안전하다면, 그리고 더 좋은 고기를 싼값에 먹을 수 있다면 사람들은 이를 마다 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등장하면 싼값을 무기로 세계인의 식단을 순식간에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 이런 것은 어떨까? 해충이나 바이러스 저항성 유전자조작농산물처럼 질병 저항성 인간으로의 재탄생. 암을 비롯한 주요 질병들이 유전적 요인에 크게 좌우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또 유전자 변형을 통해 곡물이나 동물을 우월한 품종으로 개량할 수 있다면 인간이라고 그러지 말란 법은 없다. 세계 각국이 인간 유전체 정보를 구명하는 게놈 프로젝트를 앞다퉈 진행하고 있다. 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되는 순간 인간개조론이 본격화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 때문일까? 유전자변형 농산물이 밀려들면서 개인적으로 식품의 성분, 원산지, 재료의 내용을 꼼꼼히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안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만이 아니다. 지금의 생명공학이 어디까지 갈 것이며, 그것은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한 생각의 혼란이 나 스스로를 유전자변형 농산물과 일정한 거리를 두도록 만들었다.
GMO 찬성론자들은 주장한다. 지금까지 이를 섭취한 수억명의 사람들이 별다른 이상 증상을 보인 적이 없다고. 또 이미 오래 전부터 교잡을 통해 수많은 품종개량이 있었고, 유전자변형 농산물도 이와 다를 게 없다는 논지를 펼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과학의 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 과학이인간 역사와 함께 발전해왔듯이 생명공학 또한 인간의 이상과 가치, 현실적인 국민정서와 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 생명과학이 발전할수록 이에 대한 경계심과 인간 본연의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사회적 움직임이 강화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안전에 문제가 없다 해도 다리가 하나 달린 닭을 식용으로 먹는 사람은 없다. 단순히 상품으로서 하자 이전의 문제다. 그리고 이런 선택에 대해 누구도 비과학적이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병충해 저항성 유전자변형 콩이나 다리 하나 달린 닭이나 변종이란 측면에선 다를 게 없다. 실제로 GMO 농산물에 대해 정서적인 거부감은 신체 이상이 있는 동물에 대한 거부감만큼이나 본능적이다. 유전자변형 농산물의 안전성 문제가 해결된다 할지라도 정서적인 거부감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그것이다.
사회의 가치 기준을 뒤바꾸는 과정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토론과 합의가 필요하다. 정서적 반감을 비과학적이라고 비난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과학과 다른 차원의 논쟁일 뿐 비과학적인 것이 아니다. GMO를 둘러싼 논쟁이 겉으로는 식품 안전성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회적 가치 충돌이라는 더 큰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있다는 얘기다.
또 하나의 이슈는 GMO 출현과 함께 소비자의 선택권이 박탈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생산성과 가격경쟁력에서 우월한 유전자변형 농산물이 시장을 장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콩과 옥수수의 경우 이미 국제 시장에서 유전자변형 작물이 아닌 것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처럼 힘들다.
하지만 GMO의 시장 점유율이 높아질수록 소비자들이 갖게 되는 정서적 불안감과 거부감은 더욱 커질 것이다. 곡물에만 그치지 않고 채소나 고기도 유전자변형 식품이 아니면 먹을 수 없게 된다는 공포, 또 GMO를 먹느냐 아니냐가 빈부의 차이를 보여준다는 데 대한 반감도 강하게 존재한다. 나아가 생명공학이 인간 존재의 영역까지 확산된다면 소비자들의 정서적 반발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생명과학의 미래는 기술이 아니라 사회적 공감과 합의, 나아가 가치 기준의 재정립에 달려 있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