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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관점] '활동가들은 지칠 줄 모릅니다' — 30년간 전 세계 유전자변형 농작물은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것으로 입증되었지만, 유전자변형 농작물은 여전히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조직적인 반-GMO 활동에 대한 이해와 소통
김동헌
국립농업과학원 생물소재공학과
우리는 살아가면서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간에 크고 작은 변화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가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혹은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에 부합하는지에 따라 우리는 그 변화에 대해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그러나 누구도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는 없으므로, 살면서 부딪히는 모든 변화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고 판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평소에 신뢰하는 사람이 주는 메시지를 그냥 받아들여 자신의 생각이라고 여기게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변화의 요인을 이해하기 위해 골머리를 썩이지 않고 비교적 손쉽게 사회적 이슈 등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정할 수 있지만, 근거가 부족하거나 편향된 시각에 의해 왜곡된 메시지에 근거한 판단으로 사회와 인류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할 위험성도 있다.
지난 20여 년 간의 재배 경험과 수많은 국가와 기관에서 실시한 위해성평가 결과를 보면 GM 작물이 교배육종 작물과 위해성에서 차이가 없다는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GM 작물에 대한 반-GMO 압력단체의 반대 주장은 멈추지 않고 있으며 일반 대중의 불신도 줄어들 줄 모른다. 유럽과 같은 부유한 국가에서 실질적인 농업유전공학의 금지 정책은 점점 더 강화되고 있고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에서는 GM 기술이 자국의 소규모 영세농가의 수익에 도움을 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상업적 재배를 계속 망설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GMO와 관련된 사회분위기는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부정적이다. 이러한 수수께끼 같은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GMO와 관련된 논란에 대해 역사적 관점에서 국제적인 흐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GMO에 반대하는 직업적인 압력단체들은 1970년대의 환경운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1970년대에 로마클럽이 출판한 ‘성장의 한계 (Limit to growth)’라는 보고서는 당시 석유 위기에 대한 대중의 우려 증가와 함께 인류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켜 다양한 환경운동의 불씨가 되었다. 환경보전운동의 확산에 대응하여 각국 정부는 환경보전, 에너지 보전,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정책과 교육시스템을 정비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대체 에너지와 농업 부분의 연구개발 확대는 다양한 신기술의 개발로 이어졌다. 그러나 당시 환경 운동 지도자들 중 지속가능한 신기술 개발의 미래를 부정하고 인간이 자연에 대한 주요 위협이며 사업과 신기술 자체가 주요 문제라는 견해를 가진 그룹들은 점차적으로 그린피스, 지구의 형제들과 같은 국제적인 연대를 형성하는 국제NGO 단체를 구성하였다. 이들은 녹색혁명이 단품종 대량재배, 비료 등 화학물의 대량투여와 같은 부정적 영향을 끼쳤고 농업생명공학도 녹색혁명의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위험성을 크게 과장하였다. 이들은 점차적으로 초기의 환경지킴이 역할에서 벗어나 고도로 능숙한 언론 및 대중 전략을 행사하는 직업적인 정책 압력단체로 변화하였다. 이들은 농산물 교역과 농업신기술로 대표되는 다국적 농업기업에 대항하여 식량안전을 확보하는 농업시스템을 상상한 식량주권 개념을 주장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슬로건을 통해 손쉽게 일반 대중의 관심과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정부로부터 막대한 자금지원을 받게 되었고, 보조금 등을 활용하여 개발도상국의 부패 정권에 대항했던 민주화 운동가들을 자신들의 하부 조직으로 끌어들였다. 이들의 활동으로 인해 환경변화에 대응하는 지속가능 기술로 여겨졌던 농업생명공학은 원자력 기술 정도의 위험성을 가진 기술로 여겨지게 되었다. 실제로 1992년 리우 선언과 아젠다 21에서 지속가능 기술로 묘사되었던 농업 생명공학은 최근의 다자간 환경협약 등에서는 완전히 배제되고 있다. 이러한 국제 NGO의 활동은 농업생명공학 분야에 여러 가지 영향을 끼쳤다. 우선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불확실성이 큰 규제에 대응하는데 대한 어려움으로 인해 1980년대에 설립되었던 수 많은 농업생명공학 벤처 기업들이 자금과 규제 대응 역량이 충분한 거대기업에 흡수 합병됨으로써 시장의 집중화가 심화되었다. 또한 농업신기술 개발을 목표로 설립되었던 각국의 공공연구기관은 신기술 개발 보다는 규제와 관련된 연구 기관으로 전환되었고, 중소 종자기업 등의 투자 의지도 크게 저하되었다.
역사적으로 기존 사회의 혁신적 변화를 불러오는 새로운 과학 기술은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는 격렬한 사회적 논란과 저항 운동을 야기해왔다. 19세기 초반 산업혁명에 의해 촉발된 러다이트 운동은 증기기관이라는 신기술에 대항한 노동자들의 기계 파괴 운동이었지만 이면에는 초기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반발이라는 사회∙경제적 갈등이 숨어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농업생명공학은 기술 자체가 위험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르과이라운드 등 세계 교역 자유화와 세계 각 국이 가진 사회 경제적 모순 등 사회 경제적 갈등의 희생양이라고 할 수 있다. 현 시점에서 세계 환경보호단체와 그들의 반 생명공학 활동은 선진국과 개도국에서 높은 수준의 인기를 유지하고 있고 그만큼 농업생명공학과 GMO가 가진 기아와 기후변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잠재적 가치의 발현은 지연되고 있다. 그러나 산업혁명과 러다이트 운동의 전개에서도 볼 수 있듯이 현재의 신기술은 미래에는 기존기술의 하나로 수용되어 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전환기를 현명하고 순조롭게 지나가게 하기 위해서는 농업생명공학에 종사하고 있는 대학 등 공공부분의 식물 과학자들과 중도적인 견해를 가진 환경보호단체의 소통을 통한 인식변화가 필요하다. 세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현재 논의되고 있는 담론들의 기본 가정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생명공학에 대한 논의를 재구성하여 생명공학에 대한 인식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인식변화의 첫 걸음은 대화의 상대방이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상충되는 주장들 사이에 접점은 없는지 찾아보는 것이 아닐까?